[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주말 예능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돌아왔다. 지난 12일 아스널과 레스터 시티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라운드를 소화했고, 벌써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명가의 부활을 선언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이 시즌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승격팀’ 허더즈필드 타운의 선전과 아스널의 초반 부진도 주목할 만하다.

선수로 좁히면 신입생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맨유로 이적한 로멜루 루카쿠가 리그에서 3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로 유니폼을 갈아 입은 알바로 모라타도 2골 2도움을 올리며 몸값을 해내고 있다. 여기에 3라운드에서 아스널을 제압한 리버풀의 삼각 편대 사디오 마네(3골), 로베르토 피르미누(2골 2도움), 모하메드 살라(2골 1도움)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3라운드가 지난 상황에서 공격수들만큼이나 주목받는 선수가 있다. 벌써 리그에서 2골을 기록하며 득점 공동 3위에 랭크돼있다. 그 주인공은 첼시의 왼쪽 날개 마르코스 알론소다. 알론소는 지난 2라운드 토트넘과의 맞대결에서 2골을 터뜨리며 첼시의 2-1 승리를 이끌었고, 위기의 첼시를 구해냈다. 3라운드까지 진행된 EPL 최고의 선수는 알론소였다. 알론소는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EPL 3라운드 파워랭킹을 발표했는데 7,66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 선수를 주목한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월드클래스 측면 수비수라 부르기 힘든 선수고, 1990년생의 비교적 젊은 선수지만 많은 사연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 첼시에 오기 전까지 다양한 무대를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음주 운전으로 살인자라는 소리까지 들은 적이 있는 선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정지훈의 HIS-tory'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유럽 최고의 풀백으로 우뚝 선 알론소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축구 집안에서 성장한 알론소, 레알 유스 입단

알론소는 199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엘리트 축구 집안에서 성장했다. 알론소의 할아버지 이마스는 레알 마드리드 1군에서 8년 동안이나 활약했고, 아버지 페냐도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이런 이유로 알론소도 자연스레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고,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알론소의 재능은 탁월했다. 9세의 나이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 팀에 입단한 알론소는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했고, 또래보다 월등한 축구 실력으로 각 연령대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였다. 성장세는 가팔랐다. 알론소는 2008년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 B(3부 리그)에 소속돼있는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에 입단했고, 많은 기대를 받았다.

알론소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당당한 체격과 기본기 그리고 탁월한 축구 센스로 레알의 미래로 떠올랐고, 2008년 2월 22일 데뷔전을 치렀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알론소를 지켜본 이가 있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었던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알론소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고, 2009년 12월 11일 발렌시아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부 리그) 경기를 앞두고 알론소를 소집했다. 그러나 최종 18명에 들지는 못했다.

결국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알론소는 2010년 4월 4일 라싱 산탄데르와 경기에서 후반 막판 곤잘로 이과인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됐고, 이 경기에서 레알은 2-0 승리를 거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론소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이후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 B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B팀에서 39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수비수지만 공격 본능도 탁월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1군의 벽은 높았다. 1군 데뷔전을 치른 알론소는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미 레알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했다. 스페인 U-19 대표팀에서도 선발되며 기량을 인정받은 알론소는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이적을 준비했고, 결국 2010년 잉글랜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행선지는 볼턴 원더러스였다.

# 볼턴에 입단한 알론소, 음주 운전으로 ‘살인자’가 되다?

기대와 달리 레알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알론소는 2010년 7월 27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볼턴 원더러스로 입단했다. 사우샘프턴과 리그컵에서 데뷔전을 치른 알론소는 볼턴에서 빠르게 적응했고, 안정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선발과 교체를 오갔다. 그의 첫 번째 리그 데뷔전은 2011년 1월 1일 리버풀 원정 경기였고, 폴 로빈슨의 출전 금지로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팀은 1-2로 패배했지만 알론소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고, 스페인 무대보다 거친 잉글랜드 무대에서 피지컬이 좋은 알론소는 빠르게 적응했다.

상승세를 타던 중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5월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휴가를 보내던 알론소가 교통사고로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알론소는 볼턴에서 시즌을 마치고 마드리드로 돌아가 레알 유스에서 친했던 동료들과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밤새 음주를 즐기다가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냈다. 당시 알론소가 운전한 차에는 레알 유스 동료들과 여성들이 있었는데 시속 112.8 km/h의 속도로 벽과 충돌했다.

결국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19세의 여성이 사망했다. 당시 알론소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스페인 허용 수치의 두 배(0.93)에 가까웠고, 스페인에서는 음주운전으로 붙잡히기만 해도 징역이었기 때문에 징역이 불가피해보였다. 이때 스페인과 영국 언론들은 알론소를 향해 ‘살인자’라 불렀고, 유망한 축구 선수가 이 사건으로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알론소의 음주운전 사고는 심각했다. 특히 동승한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기 때문에 스페인 경찰은 알론소에게 엄중한 벌을 내리겠다고 했고, 결국 21개월 징역이 선고됐다.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였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알론소는 6만 1천유로의 벌금과 함께 3년 4개월의 운전 금지로 변경됐다.

결국 알론소는 계속해서 볼턴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알론소는 훗날 당시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사고였고, 반성을 많이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축구만 집중했다’고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끔찍한 사건이 축구 선수 알론소를 더욱 발전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알론소는 볼턴에서 최고의 풀백으로 거듭났고, 2012-13시즌에는 지역지 ‘볼턴 뉴스’가 선정하는 볼턴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 믿고 쓰는 레알산, 콘테 감독의 부름을 받다

알론소의 성장세는 인상적이었다. 음주 운전 사건을 계기로 축구에만 전념한 알론소는 신체적으로 더욱 강해졌고, 안정적인 수비력에 정교한 왼발 킥을 장착하며 볼턴의 주전 풀백으로 떠올랐다. 당시 국내에서도 이청용의 동료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볼턴에서 3시즌을 소화하면서 리그 35경기에 출전해 5골을 터뜨리며 골 넣는 수비수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볼턴 뉴스’의 기자는 최고의 시즌을 보낸 알론소를 향해 “레알 마드리드에서 온 알론소가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신체적으로 더욱 강해졌다. 또한, 가장 꾸준한 풀백으로 성장했고, 중요한 골들을 많이 넣었다”고 평가했다.

볼턴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낸 알론소는 안주하지 않았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알론소는 스페인에서 기본기를,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신체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수비력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국 알론소는 2013년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A 피오렌티나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공식 경기를 9차례 소화한 알론소는 2014년 1월 선덜랜드 거스 포옛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돌아왔다. 선덜랜드로 임대 이적한 알론소는 곧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그컵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고, 팀의 2-1 승리에 일조했다. 이후 알론소는 선덜랜드의 주전 풀백으로 활약하며 16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선덜랜드에서 피오렌티나로 복귀한 알론소는 유럽 최고의 풀백으로 성장해 있었다.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알론소는 완벽하게 주전 자리를 꿰찼고, 두 시즌 동안 무려 7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피오렌티나의 상승세를 이끌며 세리에A 최고의 풀백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부족했던 수비력과 안정감을 장착했다.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알론소를 향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특히 첼시의 지휘봉을 잡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2016년 8월 30일 첼시와 5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적료는 약 2400만 파운드(약 358억 원)였고, 알론소의 몸값은 레알 유스를 떠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있었다.

# 첼시의 든든한 왼쪽 날개, EPL 랭킹 1위가 되다

사실 첼시에서 알론소를 영입했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다. 기대반, 아쉬움반. 콘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첼시가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알론소는 곧바로 사람들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놓았다. 9월 20일 레스터 시티와 리그컵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알론소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콘테 감독의 믿을 맨은 알론소였다. 시즌 초반 주제 무리뉴 감독이 사용한 4-2-3-1 포메이션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자 콘테 감독은 3-4-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가져갔고,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특히 알론소는 첼시의 든든한 왼쪽 날개로 자리 잡으며 맹활약했고, 수비력, 태클, 패싱력, 공중전 등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정교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공겨 포인트를 기록하며 EPL 최고의 풀백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콘테 감독의 첼시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뒤집고 3백 전술로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 핵심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알론소다.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알론소는 지난 시즌 리그 31경기에 출전해 6골 3도움을 기록했고, 경기당 1.5개의 슈팅, 77.8%의 패스성공률, 공중볼 2.4개, 태클 1.9개, 가로채기 1.5개, 클리어링 2.5개, 키패스 0.8개, 롱패스 1.7개 등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 알론소는 여전히 첼시의 왼쪽 측면을 책임지고 있고, 리그 3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하며 벌써 2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토트넘과의 맞대결에서 정교한 왼발 킥으로 두 골을 기록하며 첼시의 승리를 이끌었고, EPL 파워랭킹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알론소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비록 과거 음주운전 사고로 동승자를 사망하게 만들었지만 이때부터 알론소는 축구에만 전념하며 더 발전했고, 과거를 반성하며 현재는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 부족한 것을 하나씩 발전시키며 EPL 최고의 풀백으로 성장했다.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데일리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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