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정지훈 기자= 수그러드는 것 같던 '히딩크 논란'의 불씨가 더 큰 불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직접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히딩크 측과 대한축구협회의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을 잊고 있었다. 이 논란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신태용 감독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이 14일 오후 6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부임설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국내 언론사 유럽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은 내게 제2의 고향이다. 감독이든 기술자문이든 한국 축구 위해 어떤 형태로든 기여할 용의 있다”는 뜻을 직접 밝혔다.

물론 한국 대표팀을 맡겠다는 직접적인 의사 표현은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협회와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 축구협회의 결정을 존중한다. 지금으로서는 대표팀 감독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자문하는 상황은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며 논란을 잠재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다른 발언이 논란의 불씨를 다시 키웠다. 히딩크 감독은 “재단 사람들을 통해서 지난여름 대한축구협회 내부 인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대한축구협회의 주장과 엇갈리고 있고, 진실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고,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 히딩크 측vs김호곤 위원장, 진실공방 속에서 위기에 빠진 KFA

한 쪽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일단 히딩크 측의 주장은 이미 지난 6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됐을 때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부임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회의 입장, 아니 김호곤 부회장의 입장은 다르다. 김 부회장은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서 대표팀 감독 부임을 놓고 접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 직후 김 부회장은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통해 “비공식적이든, 공식적이든 히딩크 감독 측과 접촉한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면서 입장이 조금은 바뀌었고, 김 부회장은 히딩크 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의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전달했다.

공개된 메시지에는 "부회장님,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국대 감독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 진출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해서요"라고 돼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히딩크 측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 당시 나는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되기 전이라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었다. 이후 히딩크 측과 전화통화를 포함해 어떤 접촉도 없었다”며 히딩크 측의 일방적인 메시지였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히딩크 측은 김 부회장이 메시지를 확인했고, 이후 전화 통화도 했다고 밝히면서 김 부회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노 사무총장이 협회 인근에서 김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술위원장 부임 이후에도 연락을 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여론은 최악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미 6월에 협회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거세지고 있고, 김 부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협회의 비리까지 터지면서 사면초가에 빠졌고, 협회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 히딩크 논란의 재점화, 최대 피해자는 신태용 감독

히딩크 측과 협회의 진실공방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한 사람을 잊고 있다. 어쩌면 이번 일에 가장 많은 연관이 있는 인물이고,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바로 한국 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다.

사실 신태용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이후 독이 든 성배라 불렸던 대표팀 지휘봉을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고 잡았다. 어쩌면 독이 든 성배가 아니라 사약이 든 깨진 사발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당시 대표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신태용 감독은 용기를 냈고, 중요한 2경기를 앞두고 독이 든 성배를 과감하게 마셨다.

물론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두 경기 모두 0-0 무승부였고, 이런 이유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진출을 했다’가 아니라 ‘월드컵 진출을 당했다’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신태용 감독이 우즈벡전 이후 이란과 시리아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선수들과 기뻐한 모습에서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실망감이 커진 상황이지만 우리는 시계 바늘을 두 달 전으로 돌려봐야 한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후 한국 축구는 최악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최종 예선 두 경기에서 무조건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소방수로 신태용 감독이 나섰다. 당시 축구 팬들은 “신태용 감독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실패하더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맹비난이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의 부임설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신태용 감독의 사퇴를 바라고 있고, 도를 넘은 비난을 하고 있다. 최악의 시기에 월드컵 진출을 이뤄낸 감독에게 너무 가혹한 비난이었다.

계속해서 상처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신태용 감독이다. 아무리 경기력이 좋지 않았어도 최악의 시기에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을 진출시킨 감독이 한 순간에 대역죄인이 됐다. ‘칼로 벤 상처는 아물더라도 말로 받은 상처는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너무나도 쉽게 뱉은 말들이 신태용 감독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다.

하루 빨리 논쟁이 끝나야 한다. 특히 신태용 감독은 10월에 있을 유럽 원정 평가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고, 선수단을 선발해 9개월 남은 월드컵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논란과 진실공방으로 인해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할 시기를 계속해서 놓치고 있다.

이제는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이 나오고 협회는 “한국축구와 우리 축구대표팀에 대한 히딩크 감독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데 히딩크 감독이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 기술위원회 및 신태용 감독과 협의하여 히딩크 감독에게 조언을 구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겠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말로는 부족하다. 공식 입장의 요점은 '신태용 감독을 믿고 가겠다'지만 히딩크 감독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팀 감독 부임에 대한 가능성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 뒤로 숨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김 부회장은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협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신태용 감독에게 완벽한 힘을 실어주든, 아니면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진=윤경식 기자, 게티 이미지,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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