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축구 선수를 시작해 프로로 가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축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이고, 많은 축구 선수들이 도중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은퇴 이후 지도자, 에이전트 등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축구인' 방상호가 평범하지만 그래서 특별한 축구 이야기를 전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편집자주]

‘10’번의 타이틀, ‘6’번의 이적, ‘2’번의 큰 수술. 축구선수 이요한을 의미하는 숫자다. ‘축구 명문’ 동북고등학교 출신으로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이요한은 K리그 데뷔 시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렸다. 특히 강력한 대인 방어와 뛰어난 수비 리딩을 바탕으로 주목을 받았고, 잘생긴 외모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요한의 축구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인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7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김상록과 맞트레이드 되며 제주 유나이트로 이적했고, 이후 전북 현대, 부산 아이파크, 성남FC 등을 거쳐 2016년에는 태국 2부 에어포스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2016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요한은 제2의 인생을 주저 없이 선택했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창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2016년 강구초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에 접어든 이창현은 뛰어난 지도력을 보이며 2017년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U-12부에서 강구초등학교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다. 이후 2018년에는 대전 시티즌의 산하 학교인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며 새로운 꿈을 이어가고 있다.

성실함과 희생으로 축구선수를 살아온 이요한과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이창현의 이야기를 ‘방상호의 무모한도전’을 통해 전달한다.

-현역 은퇴 후 이름을 개명하면서 근황을 확인 할 수 없었다.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현재 대전 시티즌 U-18 팀의 코치를 하고 있다. 지도자 생활 3년째이다.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즐겁게 지도자로서 노력하고 있다. 단지 흠이라면 주말부부라는 단점이 있다.

-대전으로 오기 전에는 강구초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차이점은?

처음에는 재능 기부 식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도자로 마음을 정한 후 초등학교를 경험을 하고 싶었다. 축구의 시작인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어 재능기부가 7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그 7개월 동안 아이들에게 많은 점을 배우고 느낀 점이 상당히 많았다. 아이들과 즐겁게 운동하면서 많은 것을 교감하다보니 그 해 경북리그 우승과 최우수지도자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 지도자에 대한 진로를 확정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지도자 생활이 현재 고등학교 생활이 도움이 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다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천지차이이다. 저학년 시절에는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들을 축구선수로 만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즐겁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지도를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거의 성인이라 생각한다. 성인에 근접을 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전술적인 이해도, 멘탈 관리, 직업정신을 강조하면 지도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생과 고등학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느낀다. 유소년 무대와 성인무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유소년 시절 지도자들은 정말 존경스럽다고 볼 수 있다.

-칼럼이나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프로출신이 아닌 지도자들은 풀뿌리 축구에서 올라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본인은 프로출신이라 어렵지 않게 고등학교 유스팀 지도자를 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이다. 유명 선수 출신의 지도자들도 많지만 솔직히 비주류 지도자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선수경력이 오래되지 않더라도 축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더 많은 것 같다. 현장에 직접 나와 보니 비주류 지도자들을 더 선호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나 또한 프로선수시절로 경험하고 직접 배운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장점이 될수 있지만 프로출신이라 해서 지도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경험 없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게나마 경험했지만 유소년 지도를 해보니 지금 선수들에게 다른 방향성과 다른 목표치가 생기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유소년을 지도하는 분들을 정말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축구선수 이야기를 해보겠다. 학창시절에는 축구를 잘했는가?

잘하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축구가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축구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중, 고등학교를 보내다 보니 즐거움을 많이 잃은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힘든 상황도 많았고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꿈과 목표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늘 노력했고 성실하게 임했다.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난 잘하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 기억 속에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것만은 학창시절에 누구보다 앞서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도 연령별 대표팀을 많이 다녀오지 않았나?

초, 중, 고 시절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고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꾸준히 팀에만 충실했고 노력했다. 어느 팀에 누가 잘 한다 이런 얘기만 들었지 내가 대표팀에 선발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마무리시기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U-18 대표팀에 선발 되었다.마지막 대회인 추계연맹전 결승전 경기를 대표팀 감독님이 보시고 발탁이 되었다. 그게 첫 대표팀이었다. 이글을 읽는 중, 고등학교 선수들도 항상 기회는 열어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표팀 합류해서도 마음을 비우고 늘 해왔던 것처럼 팀에만 충실하고 성실하게 임했다.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는지 그 이후 대표팀에 늘 발탁이 되었다.

-성실하고 희생정신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창시절 및 대표팀에서도 줄 곳 주장을 맡았다. 주장에 대한 부담감과 현재 아마추어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일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기적으로 생활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팀의 대한 부분을 많이 생각해야하니 어린나이에는 주장이 많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잘해서 캡틴이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한다. 팀에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지도자가 믿기 때문에 팀을 위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팀의 좋은 결과가 있으면 당연히 주장이 부각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캡틴 생활을 많이 했지만 그 당시 내 장점은 리딩, 소통, 희생, 성실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도자분들이 캡틴으로 임명을 해주신 것 같다. 단순히 주장이라고 해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면 팀이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멤버다. 인천의 ‘프렌차이즈 스타’였지만 많은 팀을 돌아다니며 저니맨이 됐다. 이유는?

처음에는 대학을 가기를 원했다. 더 많은 실력과 경험을 쌓고 싶었다. 아직 성인무대는 조금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팀에서 입단을 제의를 해 많은 고민을 했다. 프로선수의 대한 두려움과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제일 많이 들었다. 막상 프로로 부딪혀 보니 해볼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 당시 구단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나 또한 당시 대표팀을 많이 다녀오고 자신감도 상승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김현수, 김학철, 임중용 선배님들처럼 인천에 오랫동안 머물며 어린친구들에게 많은 조언과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지금에서나 말할 수 있지만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오랫동안 ‘원 클럽 맨’ 축구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다. 은퇴도 인천에서 하고 싶었다.

그러나 3년차에 아쉽게도 인천에서 제주로 팀을 이적하고. 그 이후에도 팀을 여러 번 이적했다. 어느 순간에는 계속되는 이적에 나도 모르게 무덤덤하게 시간이 흐르듯 넘어가게 되었다.

인천에서 떠난 이후에는 한 팀에서 오랫동안 있어야 되는 생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팀을 이적 할 때마다 너무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고 배우게 되는 장점도 생기게 되었다. 많은 팀을 옮긴 것이 지금 지도자 생활에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축구선수로 큰 부상을 당했다. 십자인대가 2번 끊어졌다. 은퇴할 수도 있엇지만 계속 프로무대에서 활약했다

베이징올림픽 예선 진행 중 십자인대를 다쳐 올림픽 무대의 꿈이 무산돼 정말 많이 울었다. 매 순간이 아쉽고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병실에서 보다보니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서 더욱 재활의 매진을 한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난 할 수 있다’는 말을 가슴의 새기고 있었다. 그 당시 최강희 감독님께서는 믿고 기다려 주셨다. 복귀 후 첫해 우승을 했다. 팀의 많은 기여를 통해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뒤 십자인대가 또 파열되어 절망을 했다. 축구를 떠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재활을 통해 복귀를 했지만 그 이후에는 부상도 잦아졌다.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김학범 감독님께서 몸 상태를 많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선수는 확실히 어떠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에 따라 운명이 좌우 한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의 큰 부상을 당하면서 감독님의 기다림과 관심으로 나 또한 기대의 부응 할 수 있도록 정말 간절하며, 더욱 열심히 재활을 집중 할 수 있었다. 누구든 부상을 당하더라고 절대 포기 하지 말라고 전달해주고 싶다

-현재 축구선수를 꿈꾸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선배 입장과 지도자 입장으로 물어보고 싶다

일단 선배로서 요즘 선수들은 몸 관리도 잘하고 예전보다 확연히 피지컬적인 부분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좀 더 바라고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은 항상 그 자리의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을 유지 하기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20세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어릴 때 목표한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성실하게 임하다보면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목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노력해야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직업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지도자와 선수간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활과 경기장 안에서는 확연히 틀려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도자가 많은 조언을 해준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받아들이는 입장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업정신을 갖고 하다 보면 분명히 받아들이는 입장도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아이들은 자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노력보다는 내려놓는 것을 많이 보는 것이 사실이다. 시간을 허비하면 목표를 절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정한 축구선수로 직업정신으로 통해 남들보다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쟁은 불가피하다. 결국 누군가는 프로선수가 되고 누군가는 프로선수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아이들은 잘 모르지만 프로에서도 지도자에게 혼도 많이 나며 배움도 많이 받는다. 프로로 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하게 할 수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 배움은 끝이 없다.

글=방상호 지스포츠클럽 단장

인터뷰/사진=이창현(대전 시티즌 U-18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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